감리교는 영어 ‘Methodist’를 한문으로 번역한 말입니다. 참고로 중국어로는 웨슬리교를 뜻하는 ‘衛理敎’, 미국 감독 교회를 뜻하는 ‘美以美교회’, 그리고 메도디스트의 번역어 ‘監理敎’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원어 ‘메도디스트’는 1729년부터 옥스퍼드 대학에서 웨슬리 형제가 ‘Holy Club'(神聖會) 운동을 전개하면서 주어진 이름이었습니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경건모임을 가지면서 규칙적이고 조직적인 성결운동에 집착하자 여러 가지 멸시와 조롱 섞인 별명들을 지어 붙이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오늘까지 살아남은 용어가 메도디스트였습니다. 1732년 중반 경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 처치 학생이었던 존 빙햄(John Bingham)이 “우리 중에 새로운 메도디스트들이 출현했다”고 말했을 때 웨슬레안들과 관련해서 처음 세인들 속에 유포되기 시작했습니다. 신성회의 주요 멤버 중 한 사람이었던 옥스퍼드 학생 존 클레이톤(John Clayton)이 1732년 8월 웨슬리에게 보낸 서신에서 본격적으로 메도디스트라는 말을 웨슬리에게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때로 경멸적인 의미로, 혹은 외경스러운 칭호로서 웨슬레안들을 지칭하는 이름으로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웨슬리 이전에 ‘메도디스트’라는 이름은 17세기에 주로 칼뱅주의자들이 인간의 자유 의지를 긍정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을 폄하해서 불렀던 말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절대 주권만 붙들려고 했던 칼뱅주의자들이 볼 때 이들이 인간의 자유의지와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여러 가지 인위적인 성결 방법들을 추구하는 것이 위험스럽게 보였기 때문에 ‘New Methodists’, 즉 ‘新규칙쟁이들’이라고 경멸했던 것이지요.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웨슬리의 신성회 멤버들 역시 기독자의 완전에 이르기 위하여 갖가지 효율적인 성결 수단과 방법들을 모색한다는, 다분히 경멸적인 의미에서 이 칭호를 얻게 된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한 때 웨슬리는 자신의 설교에서 메도디스트 운동의 시원을 회상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메도디스트라는 말을 “특별한 식이요법이나 운동 방법 등에 의해 모든 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은 고대 로마의 네로 황제 시대의 일군의 의사들과 연관시키고 있습니다. 의사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식이요법이나 다양한 운동 방법을 강구했던 것처럼 웨슬리와 메도디스트들이라고 불린 사람들 역시 성결과 기독자의 완전에 이르기 위하여 각종 방법들에 천착했기 때문에 메도디스트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입니다.
일찍이 웨슬리는 메도디스트라는 말과 관련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메도디스트’라는 이름이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영원한 망각 속에 파 묻혀버린다고 할지라도 저는 여전히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저는 어떤 종파나 당파의 우두머리가 되고 싶은 야심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럴 수 없다면, 적어도 이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 말의 의미는 바로 알도록 합시다.” 웨슬리의 말처럼 메도디스트라는 형식적인 이름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은 몹시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 메도디스트라는 용어의 기원과 관련해서 우리가 잊어서 안 될 매우 중요한 사실은 초기 웨슬레안들이 성결에 이르기 위하여 여러 가지 실천 행위와 방법에 치중했다는 점입니다. 칼뱅주의자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면서 의혹의 눈초리로 보았지만, 성결 혹은 성화야말로 웨슬레안들이 메도디스트라는 이름을 얻은 결정적인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 한국, 인천 내리감리교회 담임, 김흥규 목사의 글에서 퍼옴